





현상변경: 내가 나인 이유를 들여다보기
비스타밸리 | 아트센터
Ha Jiwon_ SOLO EXHIBITION
September 27, 2025 - October 31, 2025
내 밖의 나. 배우로서 ‘하지원’은 어떻게 ‘나’ 자신일 수 있을까. 그는 선택된 배우의 캐릭터를 연기해왔고 우리는 ‘가면효과’(masking effect)를 통해 그를 구성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분명 그를 알 수 없다. 다만 문득 어느 순간 그 페르소나를 빗겨나 드러나는 표정과 몸 짓, 자세와 말투 끝에 미세한 자아의 조각들을 그저 슬쩍 엿볼 뿐이다.
내 안의 나. 세상엔 많은 ‘나’가 존재한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에서 빛나는 캐릭터로 알려진 ‘나’, 주변 지인들이 아는 소탈한 ‘나’, 가족들이 아는 어린 ‘나’, 보다 친밀한 사람이 아는 비밀 이 없는 ‘나’도 있다. 거기다 나만 아는 ‘나’, 나도 모르는 뜻밖의 ‘나’도 있다. 이 수많은 ‘나’ 중에서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와 나의 관계. 사실 알고 보면 ‘나’가 먼저 있고 그다음 타인과의 관계에 놓이는 것이 아니 다. 생각해 보면 ‘나’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라 이미 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단 한 순간이라도 오로지 나 홀로인 적이 있었는가. 심지어 혼자라고 판단되는 순간에도 또 다른 나 와의 관계 속에 있지 않은가. 더구나 배우 ‘하지원’은 수많은 픽션 속 인물들로 변신해 왔다. 그 관계들은 또한 어떠한가. ‘하지원’은 사실 스타로서의 ‘배우’(star)라기 보다 극 중 ‘연기 자’(actor)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서 그는 ‘하지원’이라는 널리 알려진 유명인으로서의 스타성 에 기반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속 특정 인물과 역할에 순전히 동 화되는 연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 순간에 미쳐서” ‘나’를 “남겨둠 없이” 몸도, 마음도 그 인물에, “그 삶에 올인”해 왔다. 이렇게 꽃다운 나이를 두 번 맞이했다. 그리고 한순간, 내 앞에 선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남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수많은 ‘하지원들’ 속에 아직 내가 살고 있을까.
지금, 여기. 문득 내게 말을 걸었다. 강렬한 삶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그 벅찬 미지의 경 험을 기억하라고. 간직해온 슬픔과 충동적인 자극, 몸의 움직임, 그리고 관계로 표상되는 ‘형언 할 수 없는 감정의 언어들’까지. 새로운 감각기관(sensorium)이 자라날 때까지 ‘나’는 뒤엉킨 조형언어로 나의 초상을 그린다.
작가 하지원의 작품들은 크게 보면 신표현주의(neo-expresionism) 혹은 신구상(NouvelleFiguration) 계열의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자아를 해체하는 기관들(organs), 모양이 망가진 얼굴들(faces),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뭉개진 형상들(figures),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의 자아 들(social egos)이 그 특징들이다.
얼굴성. 작가 하지원의 작업들은 대부분 얼굴과 몸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으로 얼굴성 (faciality)은 몸의 등처럼 외부의 자극을 받기만 하거나 팔다리처럼 밖으로 표출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자극을 수용하고 동시에 내적 감정을 표정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하지원의 얼굴은 이미 존재하는 미디어 스타의 사진들을 차용한 얼굴들은 뭉개지고 탈색되어 주체의 중 심에 있는 얼굴성을 결여하고 있다. 얼굴로 대변되는 외부적 자아에 대해 판단을 정지하고 괄 호 안에 넣은 듯하다. 그의 초상화에서 얼굴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린 속도로 숨은 순간들을 간 직하지만, 요동치는 감정을 얼려버린 것 같은 한 장면의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이다.
몸성. 얼굴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며 형태의 변형을 가져오는 것은 몸이다. 프랜시스 베이 컨(Francis Bacon)의 신체와 같이 일그러지고 뒤틀렸지만 그로테스크한 공포와 존재의 불안 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원 작가의 작품은 여성성 특유의 몰입과 해체를 통해 굵고 거친 선들이 공간을 휘고 자아와 타자의 몸을 뒤섞고 분리하면서 동일시(identification)와 비동일시 (dis-identification)를 반복한다. 패션은 피부처럼 제2의 몸이 되어 기존의 몸과 섞인다. 작가 하지원은 마치 몸의 꿈틀거림으로 자아와 타자를 횡단하면서 ‘나’를 찾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몸으로 그리고 있다.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하는 ‘몸-이미지’(body-images)를 표 현하고 있다는 말이다.
어둠의 가장자리. 작가 하지원의 작업에서 보이는 검은 배경은 어두운 밤을 표상하지 않는다. 클래식 초상화의 배경처럼 아직 비어 있을 뿐 없는 것은 아니다.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대신, 신비로움을 더한다. 어두운 배경은 빛을 흡수하여 피사체 뒤에서 인물의 표정과 의상, 질감을 더욱 강조한다. 그래서 바람 같은 자유가 공기 속으로 녹아들 때쯤이면 보이지 않던 정서와 몸 짓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휘어진 붓의 흐름 속에 이질적인 것들이 동시에 터져 나올 것이 다. 그래서 밤은 낮보다 눈부시다. 반사된 흐름이 어둠 속으로 휘발되지 않고 눈부신 자유로 빛을 발한다면 순간은 영원으로 지속될 것이다.
_류제홍 박사 (문화평론가)





